미하일 칼라시니코프에 대한 사실들

Internet_20190912_115017_1.jpeg.jpg

 1. 칼라시니코프는 정규교육을 이수한 적이 없지만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AK시리즈)을 만든 업적으로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2. 그의 군대 첫 보직은 T-34를 비롯한 소련 전차의 개발 공정 담당이었다. 그러니까 비전투병과지만, 떼삼사를 훌륭하게 개수한 업적으로 상을 받았다.

3. 브랸스크 전투 당시 그는 떼삼사 전차장이었으며, 당시 계급은 병장이었다. 측면에서 습격당해 부상받고 후송하던 도중, 나치독일의 MP40 기관단총에 습격받았다.

 

당시 소대장은 “내게 MP40만 있었으면…MP40만 있었으면…!!!”이라고 처절하게 절규했고, MP40에 자신의 전우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가는걸 보고 그는 큰 감명을 받았다.

 

4. 그러니까, AK-47은 StG44의 영향을 받은게 아니다.

 

5. 칼라시니코프는 병원에서 퇴원하고  조르고 졸라서 조병창에 하사로 복귀했다. 당시 하사이던 그는 새로운 총을 개발했으나 PPSh40에 졌다. 대신, 그는 전문교육을 이수받을 수 있었다.

 

6. 칼라시니코프가 개발한 AK-47은 베트남 전쟁때 미군의 M16을 이겼다. 그는 소련의 영웅이 되었고, 소련의 어린아이도 칼라시니코프를 알지만 그는 고작 훈장과 월급밖에 못 받았다.

 

Internet_20190912_115017_2.jpeg.jpg

 7. 의외로 유진 스토너랑 칼라시니코프는 사이가 좋았다. 서로의 총기를 우수하게 평가했다.

 

8. 1980년대 말(1989), 그는 처음으로 미국에 갈 수 있었다. 이는 다름아닌 스미스소니언 무기박물관 수석큐레이터의 도움 덕분이었다.

 

Internet_20190912_115017_3.jpeg.jpg

 9. 영국놈들은 칼라시니코프에게 고문을 시행했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에 대한 사실들”에 대한 36개의 댓글

  1. 10. 일본인들은 칼라시니코프에게 쏘전스러운 그림(총 든 미소녀)을 보여줬다가 호통을 들었따.

  2. 6. 그래도 월급은 보통 노동자의 네 배 가까이 받았고 훈장도 무지막지하게 받았다. 유진 스토너는 칼라시니코프가 받은 훈장을 좀 부러워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개발자라서.

  3. 칼리시니코프:오! 유진 스토너! 미국 총은 대단하군요! 칼라시니코프:근데 영국놈들은 뭐냐? 저러니 미국이 독립하지.

  4. 서구 기자들 눈에 비친 칼라시니코프는 그냥 동네 아저씨나 동네 할아버지라서 놀랐지. 유진 스토너나 개런드는 갑부가 되었거든

  5. 스토너가 갑부? 절대 아님. AR-15 는 판권을 (이 총이 대박을 친 정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싼값에 넘겨버렸고 후계작들은 상업적으로 크게 재미를 못봐서 사업 여러번 말아먹은게 스토너임.

  6. 독소전쟁에서는 어린 남자애나 여자애가 전쟁터로 끌려온 지옥도였음.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현장 지휘관은 총든 남정네 소총병을 원했는데 정작 온것은 왠 어린 소녀가 '저 무전병입니다.'하고 온거. 그래서 골때렸다고.

  7. 칼라시니코프도 참전자이다보니, 그 꼬라지를 직접 봐갖고 더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님 말고.

  8. 맞음. 성인여성이면 뭐 어른이니 넘어가지만 코찔찔이 남자애나 여자애들 보면 '이 전쟁에 이길 수 있을까?' 의문도 느꼈곘지.

  9. 왜 그러셨는지는 모름 나도 ㅋㅋㅋ 그냥 인터뷰한 사람들이 그랬다니까 그러려니 하는 거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