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는 간사하기 짝이 없어 (생략) “이라는 말이 나왔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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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594년 초

 

당시 명나라는 조선을 도우러와서 잘 싸우다 평양성에서 크게 삐끗하는 바람에 사기가 크게 떨어짐

 

그리고 조선에 있는 일본군은 명의 참전으로 조선을 정복하는게 힘들다는 것을 알게되었음

 

결국 조선과 명은 일본(조선에 있는)과 평화회담을 진행하였고 명과 일본은 서로 싸움을 피함

 

뭐 여기서 나눈 회담이 참 가관이지만 일단 패스

 

회담이 진행되었지만 당시 이순신 장군과 휘하 조선군들이 계속해서 일본군을 소탕하였음

 

평화회담 중 잡음을 싫어한 명나라와 공세에 지친 일본군이 타협해 이순신 장군에게 전투를 그만두라는 서한을 보냄

 

이것이 바로 명나라 도사부 담종인이 이순신 장군에게 보낸 서한 ” 금토패문 禁討牌文 “

 

내용은 이럼

 

” 일본의 각 장수가 모두 갑옷을 풀고 전쟁을 그치고 본국으로 돌아가고자하니, 

 

너희 조선도 전쟁의 어지러움을 벗고 태평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어찌 양국의 이익이 아니겠는가?

 

너희의 각 병선들은 속히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일본의 진영에 가까이 주둔하지 말도록 하라.

 

교란시키는 일을 만드는 것은 사단을 일으키는 것이다.

 

몽매하게 고집 피우며 살피지 않고 이곳에 머물러 여전히 영락한 왜군을 다시 쫓아가 죽이고 배를 빼았는다면

 

너희 국왕에게 문서를 보내어 엄하게 조사하게 할 것이고, 각 관군은 병화를 일으킨 죄를 피할수 없을 것이다. “

 

 

 

물러간다고 갑옷을 벗었다던 일본군은 거제 웅천 김해 동래를 꽉 틀어쥔 채 여전히 무장을 단단히 하였고

 

주변 조선인들을 죽이고 약탈하고 군대는 계속 전진하여 성들을 공격하고있는 와중에 이런 편지를 받게됨

 

당시 전염병으로 인해 10여일간 끙끙 앓던 이순신 장군님이 화가나 바로 담종인에게 답장을 함

 

그 내용이 이러함

 

왜는 간사하기 짝이 없어 예로부터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흉악하고 교활한 적들이 아직도 포악한 짓을 그만두지 아니하고, 

 

여러곳으로 쳐들어와 살인하고 약탈하기를 전보다 갑절이나 더하니,

 

병기를 거두어 바다를 건너 돌아가려는 뜻이 과연 어디 있다 하겠습니까.

 

라고 담종인에게 답장을 보냄

 

 

이후는 도요토미가 명나라 공주를 자신의 후궁으로 바치고 땅과 재물을 바치라는 

 

개 헛소리 요구에 빡친 명이 다시 싸우기로 결정하고 평화회담은 파토 남

 


“” 왜는 간사하기 짝이 없어 (생략) “이라는 말이 나왔던 이유”에 대한 5개의 댓글

  1. 고니시랑 심유겸이가 주작질 까지 해서까지 성사시키려 개지랄을 떨었는데 결국 한쪽은 모가지 날아갔지

  2. 세이쇼오에게 고니시가 지시한대로 말하라고 했는데 정직하게 표문을 그대로 읽어버리는 바람에 전쟁 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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